note/에세이2019.01.20 13:39
190120-

  아이가 낮잠을 자는 사이 잠시 시간이 남아 예전에 자주 다니던 카페에 왔다. 오후에는 키즈카페를 겸하는 작은 동물원에 가족 나들이를 가기로 했으므로, 그야말로 잠시의 여유다. 몇 년 전 나는 단지 사람이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새로 생긴 이 카페에 들렀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직 가게를 오픈하기 전이었단다. 그런 설명을 하면서도 자리를 권하는 사장님이 좋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내오는 사장님이 좋았었고, 무엇보다 그렇게 시음아닌 시음을 하게 된 무료 커피가 좋았다. 커피를 마시는 내내 사장님은 세심하게 커피 콩을 고르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상당히 자주 이 곳에 들렀다. 내가 결혼을 하기 전의 일이다. 그게.. 벌써 몇년이나 되었다. 

  오랜만에 들른 이 카페에는 전에 자주 뵙던 사장님이 아닌 낯선 분이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오전에 이미 커피를 마신 탓도 있지만, 나도 모르게 커피 대신 모과차를 시키고 가장 구석 자리에 가방을 풀었다. 사장님이 세심하게 커피콩을 고르던 그 자리에는 테이블이 몇 개, 추가로 들어와 있었다. 질 좋았던 원목 테이블 가운데 몇 개는 합성목으로 교체 되었다. 몇 년 전 아내를 데리고 함께 왔을 때, 아내가 이렇게 좋은 테이블을 카페에 두어도 되냐며 놀랐던 그 테이블이다. 한참 아내와 함께 신혼집에 쓸 가구를 고르던 때의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아마도 천천히 실망을 하는 와중이었다. 모과차가 맛있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고개를 든 그 자리에 드라이 플라워가, 몇 해 전 찍었던 것과 같은 그 드라이 플라워가 있지 않았다면 난 이 실망을 완성할 수 있었을 거다. 카페의 벽에는 그 모습 그대로 드라이 플라워 한 다발이 정오의 햇볕을 받으며 걸려있었다. 어쩌면 먼지도 타지 않을까. 한 다발의 꽃에 의지하여 내 실망은 갈 곳을 잃었다. 인생의 많은 부분은 이런 작은 조각에 지배된다. 이 작은 조각은 현실을 회피하기에 충분한 단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지 그것이므로, 이 세상이, 인간의 정신세계가 이 모양이라는 것은 다행이도 행복한 일이다. 인스타그램을 검색해 보니, 아마도 사장님이 바뀌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 또한 다행이다. 짧은 나들이가 끝나기 전에 핸드드립용으로 갈린 원두를 한 봉지 샀다.  

 


'note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페  (0) 2019.01.20
2018 제주  (0) 2019.01.07
Fighter  (2) 2018.11.01
인공지능에 의한 위조된 공정성에 대한 우려  (0) 2018.10.17
Posted by "그냥"
note/일기2019.01.09 00:16

퇴근 할 때에, 아주 잠시였지만 햇빛이 있었다.
겨울의 한 중간에 착실히 봄이 오고 있었다.

자주 하늘을 보게 되는 건,
굽은 고개를 펴는 기지개 같은 것이라고,
문득 생각했다.




'note >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년 1월 8일  (0) 2019.01.09
2018. 10. 28.  (1) 2018.10.28
2018.10.27.  (0) 2018.10.27
2018.10.24.  (0) 2018.10.24
Posted by "그냥"
note/에세이2019.01.07 00:39

제주 첫날.

여섯 시에 일어나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조금 서둘러 청주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아홉 시 쯤이어서 여유있게 탑승할 수 있었다. 도진이에게는 이번 제주행이 생애 첫 비행이었는데, 그런 것 치고는 굉장히 태연하여 대견하였다. 제주에 도착해서도 제 때 아이 밥을 먹이고, 적당히 재우고, 사이 사이 맛있는 음식과 여유 있는 드라이브를 즐겼다. 우리 셋 모두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모처럼의 제주를 즐겼다. 여행의 첫 날로서, 더할나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이 먹먹한 것은, 이 섬이 나의 가장 부끄러운 기억을 일께우기 때문이다. 김애란은 '눈먼 자들의 국가' 에서 당분간 '세월'은, 혹은 '침몰'은 은유로서 사용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제주 역시 그렇다. 이 섬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난 내가 기억 하는 우리의 가장 큰 실패를 떠올릴 것이다. 내가 죽은 아이들을 대신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님에도 내 삶을 즐길 수 있듯이, 여전히 이 여행을 즐기겠지만, 그 감상에 이러한 사족을 더하는 것은 바로 그때문이다.


제주 둘째날.

펜션 앞, 해녀가 운영한다는 식당에서 전복죽을 포장해 아침으로 먹었다. 진한 화장을 한 여사장은 물질을 직접 할 듯한 인상은 아니다. 그러나 아마도 내가 첫 손님인 듯 말끔히 정리 된 식당내부는-창 밖의 바다와 돌과 먼지 쌓인 난로와 사람 손을 많이탄 늙은 개와 비루한 판매용 진주는- 그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제주 해녀의 집이다. 가만히 앉아 전복을 손질하는 여사장의 뒷모습을 보다보면, 물에서 막 나온 해녀가 여사장에게 망태기에 담긴 전복을 건네는 모습이 상상되는 것이다. 죽은 비리지 않고 맛이 있었다.

계획할 적에는, 오늘 오전에 작은 수목원을 들를 예정이었으나, 일기예보와 다르게 그치지 않는 가랑비로 인하여 온실을 겸하는 송당리의 카페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 곳에서 커피와 티라미수를 먹고, 튤립 구근 세개를 샀다. 씨앗을 샀을 뿐인데, 우리 부부는 벌써 꽃을 산듯 기뻤다. 도진이는 카페에서 기르는 고양이들과 함께 즐거웠다. 이 곳의 고양이들도 사람 손이 익숙한 듯 했다. 제주의 동물들은 사람에게 다정하다. 아름다운 이 동네를 떠나는 것이 아쉬워서 근처의 소품점에서 브로치와 유리 장식품을 샀다.

오후에는 해안 도로를 따라 이동하여 비자림을 구경하였는데, 추운 날씨 탓인지 도진이의 기분이 좋지 못하였다. 내일과 모레는 우리 부부가 각자 제주를 여행하는 날이므로, 비자림이 도진이의 마지막 관광코스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좀 쓸쓸하다.


제주 셋째날.

아내가 홀로 제주를 여행하는 날이다. 곧 잘 혼자 여행하는 아내이지만, 제주를 여행하는 것은 처음이란다. 내가 처음 제주를 홀로 여행했을 때의 설렘이 기억난다. 그 전에도 가족여행으로, 수학여행으로, 혹은 출장 관계로 제주에 자주 들렀었지만 내가 사랑하는 제주를 발견한 것은 2013년 홀로 제주를 여행할 때였다. 아내가 발견하게 될 제주는 나의 제주와 다르겠지만 역시 사랑스러울 것이다.

난 숙소에서 도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도진이의 낮잠시간에 창 밖을 보니 파도가 거세다. 바람이 많은 날이구나. 창에는 가끔 굵은 눈도 몰아친다. 그와 반대로 따듯하고 고요한 집안은 독서하기 좋았다. 오랜만에 은교를 읽었다.

'눈이 내리고, 그리고 또 바람이 부는가. 소나무 숲그늘이 성에가 낀 창유리를 더듬고 있다. 관능적이다.'

관능적이란 표현이 너무 적나라하다고 해도, 이 날의 오후를 함께 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문장이다. 그러고 보면 제주 역시 가끔 은교 같기도 하다. 특히 아직 난개발이 되지 않은 중산간의 어느 마을을 만날 때 그렇다.



제주 넷날.

어제부터 내리던 눈이 눈보라가 되었다. 거센 바람이 통신선을 고장내어 숙소의 와이파이가 작동하지 않는다. 켄자스의 한 마을이 토네이도로 파괴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상상되는 그 바람이다. 아마도 도로시의 판자집을 날렸을 그 바람. 오늘은 내가 홀로 제주를 여행하는 날이다. 렌트한 아반테의 조수석 범퍼부터 뒷 휀다까지는 진한 녹색 페인트로 더럽혀져 있다. 우그러진 조수석 문은 잘 열리지도 않는다. 어제 이 차를 운전한 아내의 작품이다. 분명 여행하기 좋은 날은 아니다. 그러나 토네이도에 집이 날라간 안쓰러운 도로시가 장장 40권 분량의 놀라운 이야기를 발견했듯이, 나 역시 오즈 못지 않은 제주에서 이야기를 만들거다. 더군다나 우리는 아시아나 OZ8231편을 타고 제주에 도착해, OZ8232편으로 복귀하지 않던가. 어찌되었던 여행에 출발하는 나는 맥락보다 들떠 있었고, 신이 나 있었고, 이미 행복했다. 단지 계획에 있었던 새벽 오름 투어를 조용히 취소했을 뿐이다.

송당리에서는 간단히 기념품을 사고, 표지판에 이끌려 계획에 없던 인문학 카페를 들렀다. 자리 배치가 굉장히 특이한-강의실과 유사한- 카페였다. 상당히 대중적인 서적으로 짜여진 책장이 있었고, 역시 대중적인 취향의 작은 서점을 겸하였다. 커피는 핸드드립 메뉴가 있어 시켜 보았는데, 장서 보다는 내 취향에 맞았다. 한 시간 정도만에 속독으로 박민규의 지구영웅전설을 읽었다. 손님은 나 뿐이었고, 카페의 프런트는 자리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 대신 큰 창이 있어, 날리는 눈과 함께 혼자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점심은 근처의 멋들어진 카레집에서 해결하였는데, 별로 맛이 없었다. 눈 내린 송당리는 '관능적'일 정도는 아니어도 아름다웠다.



오후에는 유명한 만춘서점에 들렀다. 근처 독립서점들이 휴무였던 탓인지, 사람이 바글거려 멋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이 곳에서 사고 싶었던 책과 우연히 만난 책을 한 권씩 구매했다. 사고 싶었던 책은 '존 버거의 초상'으로 장 모르가 찍은 것이다. 우연히 만난 책은 수지 린필드의 '무정한 빛'이다. 표지만 보고 고른 '무정한 빛'을 근처 카페에서 펼치자 마자, 평론가로서의 존 버거에 대한 매몰찬 비평을 마주친 것이 재미있다. 존 버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지성이다. 수전 손택의 논리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날카로움에 가슴이 먹먹해졌다면, 존 버거는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의 마음을 얼러주었다. 아직 책의 절반을 채 다 보지 못하였지만 수지 린필드는 그 둘에 비해 나에게 우호적인 비평가임이 확실하다. 좋아할 만한 비평가를 만남에 행복하다.

다시 가족과 함께 한 저녁은 포근하였다.





'note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페  (0) 2019.01.20
2018 제주  (0) 2019.01.07
Fighter  (2) 2018.11.01
인공지능에 의한 위조된 공정성에 대한 우려  (0) 2018.10.17
Posted by "그냥"
photo/밤빛2018.11.20 23:07

밤빛,

23:01 - 23:02


@kim_jaeyoung__

@bambit.jy



'photo > 밤빛'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빛 #003  (1) 2018.11.20
밤빛 #002  (0) 2018.11.04
밤빛 #001  (0) 2018.10.25
Posted by "그냥"
TAG 밤빛
photo/밤빛2018.11.04 13:45


밤빛,

23:43


@kim_jaeyoung__

@bambit.jy


'photo > 밤빛'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빛 #003  (1) 2018.11.20
밤빛 #002  (0) 2018.11.04
밤빛 #001  (0) 2018.10.25
Posted by "그냥"
TAG 밤빛, 사진
note/감상2018.11.04 00:27

 특히, 최근의 나는 영화를 볼 때 군더더기를 참을 수 없다. 왜 들어갔는지 모를 장면 혹은 인물을 보게 되면, 그 나머지가 얼마나 훌륭하던지 간에, 그 영화와 감독이 저질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다행이도 최근에 개봉하는 소위 명장들의 작품은 대부분 군더더기가 없다. 그러므로 나로서는 그 것을 요즘 영화 판의 트렌드라고 부르고 싶다.

 그런 측면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는 완벽에 가깝게 타이트 하다. 이 영화는, 굳이 비유하자면, 프레디 머큐리의 자서전이기 보다는 굵은 선으로 그려진 연표에 가깝다. 영화는 그 연표를 박진감 있게 따라간다. 나머지는 그의 공연을 충실하게 재현했을 뿐이다. 이 영화의 목적은 그를 설명하는 것이 아님이 명확하다. 그 대신 이 영화는, 그가 불러일으킨 감동을 2018년의 참을성 없는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고자 노력한다.

 전기 영화를 기대한 사람이 있다면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와중에 하필이면 내가 전혀 신뢰하지 않는 한 언론의 의견이 나와 다르다는 점이 재미있다.[링크]) 하지만 이 영화는 분명히 재미있고, 감동적이었으며, 내 플레이 리스트를 한 동안 퀸으로 채울 것이다.


'note >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헤미안 랩소디, 2018  (0) 2018.11.04
아이필프리티,2018  (0) 2018.10.20
조너선 와이너_핀치의 부리  (0) 2018.04.14
테드 창_영으로 나누면  (0) 2016.01.17
Posted by "그냥"
note/에세이2018.11.01 23:28



 몇일 전 출근길에 라디오에서 Christina aguilerafighter를 들었다. 고등학교 때 즐겨 듣던 곡이라 볼륨을 높였다. 이 곡은 그녀의 정규 2집인 Stripped의 수록 되어 있는데, 그녀의 앨범 중 가장 사랑 받은 앨범일 거다. 지금도 그런 지 모르겠으나, 당시의 팝송 앨범에는 자켓에 좀 오글거리는 한글 해설서가 꼭 끼워져 있었다. 이 것이 내가 산 첫 외국 앨범이었으므로, 나는 다소 오글거리는 그 해설서까지 전부 정독 했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적의 나는 몇 가지 이유로 팝송을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우선 당시 유행하던 팝송을 활용한 영어 교육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액상 감기약에 들어 있는 조잡한 딸기 맛 시럽, 어린이 치과의 간호사가 착용한 우스꽝스러운 마스크,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는 다는 산타 클로스와 같은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러한 교육 방식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어른의 노련함과 쉰내가 있었고, 그 것에 대해 내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책은 애써 무시하는 것 뿐이었던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 당시의 나는 팝송이 나에게 가요로서 기능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난 또래 중에서도 특히나 영어를 못 하는 아이였고, 가사까지 즐길 수 있는 완벽한 한국 가요가 있는데 어째서 팝송을 들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당시의 나는 무엇을 즐기기 위해 무엇을 배울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던 내가 무슨 변덕인지 이 앨범을 샀고, 닳도록 들었고, 친구의 생일에 선물로 한 장 더 사기까지 했던 거다. 당시에는 그 것이 변덕이라고 생각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대세에 자연스럽게 굴복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굴복의 중첩이다. 이제 난 평범한 30대 만큼 팝송을 듣고 평범한 30대 만큼 팝송을 좋아한다. 존 버거가 그의 책 사진의 이해에서 체 게바라에 대해 평한 바 있다. 체 게바라는 세상이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지경임을 발견했고, 그래서 혁명을 지속했고, 그래서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다고. 그는 혁명을 멈추고 세상을 용납할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서다. , 세상은 그의 혁명에 부수어 질 수 없었다. 그 역시 살기 위해서다. 만약 체 게바라가 세상을 용납해 버렸다면, 체 게바라는 죽어 없어지고, 평범한 30대가 되고, 평범한 노인이 되고, 평범한 무덤이 되었을 거다. 나는 지금 그러한 죽음의 중첩 속에서 어른이 된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Christina aguileraFighter는 그 오글거리는 해설서에 적혀 있듯이, 세상을 용납하지 않기로 한 그녀의 선언이었다. 그 것을 생각하며 노래를 듣다 보니, 세상을 용납한 나로서는 조금 아이러니한 기분이 든다. 여전히 Fighter는 듣기 좋고, 난 행복한데 무슨 상관인가 싶기도 하지만.


 아이러니란, 등신들이 비행기 사고로 죽은 밴드의 노래에 맞춰 비행기 안에서 춤추고 있는 걸 말하는 거야.

- 스티브 부세미, 영화 콘에어 에서.


'note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페  (0) 2019.01.20
2018 제주  (0) 2019.01.07
Fighter  (2) 2018.11.01
인공지능에 의한 위조된 공정성에 대한 우려  (0) 2018.10.17
Posted by "그냥"
photo/동물원2018.10.29 23:08



2018. 03.

대전 오월드



@kim_jaeyoung__

'photo > 동물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물원 #005  (2) 2018.10.29
동물원 #003  (0) 2018.10.28
동물원 #002  (0) 2018.10.28
동물원 #001  (0) 2018.10.27
동물원 #004  (0) 2015.09.11
Posted by "그냥"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