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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phabet series 비판 루이비통의 마크를 형상화한 것이 분명한 사진 작품 앞에서 미소 짓고 있는 두 사람은 Vanessa Beecroft와 Jean Marc Gallot이다. Beecroft는 작품의 작가로서, Gallot은 이 전시장을 제공한 루이비통의 President로서 이 자리에 섰다. 루이비통은 샹젤리제 거리에서 주말에도 본인들의 상품을 판매할 권리를 막 얻은 참이었고, 이 사진 작품은 그것을 기념하는 훌륭한 승전비가 될 것이었다. 루이비통은 Beecroft가 이 연작들에 대한 저작권 분쟁에 휘말리게 될 때까지 이 작품을 샹젤리제 거리에 전시하였다. 이 작품은 또한 Vanessa Beecroft의 알파벳 연작을 구글에서 검색할 때에 가장 처음 등장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구글의 검색 순위는 예술로서의 가치를 나타..
Trash_서재우 다른 세상을 통해서 자신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여행을 한다는 작가는 각 도시에 강하게 공명한다. 특히 도시 별로 사진을 묶어 소개함으로써 이 점이 지나치게 강조되는데, 구도, 톤이 모두 상이해 마치 다른 사람의 시선을 빌리는 듯하다. (LA와 뉴욕의 사진을 비교해 보라.) 덕분에 200 페이지가 넘는 책은 지겨움 없이 술술 읽혔고, 여행에 대한 향수가 늘었다. 그러나 역시 200 페이지가 넘는 시선을 접했음에도 작가 서재우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기분이다. 첫 장의 약력을 보니 매거진 B라는 것의 에디터란다. 잡지 에디터의 사진집을 선호하지 않는데, 주제가 어떻든 간에 예술을 판다기 보다는 취향을 파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본 사진집 중 여행 사진을 다루었다고 볼 만한 것이 두 권 있..
낮과 밤 나는 8시 30분까지 출근하고, 5시 30분에 퇴근한다. 지난 세기 노동자들의 처우를 생각한다면 고작 여덟 시간을 일하고 굶지 않으니 고마운 일이다. 나는 이를 밥 먹기 전 감사 기도를 올리듯 감사한다. 누구에게 감사해야 좋을 지 사실 잘 모르겠다는 말이다. 하느님이든 농부든, 전태일이든 박정희든 하여튼 반은 욕인 이 감사 인사를 받으라지. 나는 만족하면서도 동시에 힘이 든다. 나는 어떤 개 돼지가 말했듯이 어쩔 수 없는 개 돼지이므로 어쩔 수 없이 덜 일 하고 더 먹고자 한다. 이 욕심에 끝이 있을까.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일단은 한 시간만 덜 일 하면 좋겠다. 겨울 나의 삶엔 석양이 없기 때문이다. 테드 창의 소설 바빌론의 탑에서 주인공은 탑을 오르며 밤이 산의 그림자임을 목격한다. 산의 그림자가 세..
저항예찬 1993년 대전의 하천은 누가 보아도 더러웠다. 아마도 전교조였던 우리 선생님은 이 같이 썩은 물에서는 실지렁이 밖에 못 산다며 목이 터져라 열을 내셨고, 학기에 한 번정도는 갑천변에 나가 쓰레기를 줍는 봉사활동을 시켰다. 썩은 물 가득한 물가에서 검은 봉지 가득히 쓰레기를 줍고 나면, 천이 깨끗해졌다기 보다는 나까지 이 천에 동화되어 손 바닥 깊숙한 곳에서 악취가 느껴졌던 곳, 그런 곳에서도 외할아버지는 출조하실 때 마다 팔뚝만한 잉어인지 붕어인지를 너댓마리 씩 잡아오시곤 하셨다. 무뚝뚝하셨던 서산 사람 친할아버지와 달리, 나의 서울 사람 외할아버지는 기쁨을 감추지 않으셨다. 집에 돌아오시면 손주들에게 자랑할 겸 우리 집 빨간 고무 대야에 물을 채워 잡아 온 물고기들을 풀어 놓으셨는데, 한 번 날카로운..
이집트 지난 2009년, 신종플루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이집트는 자국 내의 모든 돼지(25만 마리)를 도살하였다. 신종 플루에 의한 수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직후였다. 그러나 이 빠르고 단호한 조치는 며칠 후 WHO가 돼지와 신종 플루가 무관함을 선언하며 25만 생명을 담보로 한 블랙 코미디의 소재가 되었다. 돼지가 먹어치우던 음식물 쓰레기가 범람하면서, 카이로가 쓰레기 도시가 되었다는 소식이 이 블랙 코미디의 마무리.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무지한 이집트 관료의 단호한 얼굴을 기억할 것이다. 많은 경우에 단호함은 무지를 동반한다. 세상사에 단호해져도 좋을 만큼 단순한 일은 많지 않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이 사건의 개요에는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이 몇 가지 빠져있다. 우선, 이집트가 돼지를 도살..
정의로움 초등학교 시절 공산주의에 관해, 정확히는 그들의 몰락에 관해 배울 때, 교과서가 그 원인으로 지목한 것 중 노동에 대한 동기부여의 실패가 있었다. 다사다난했던 공산주의의 몰락 과정을 초등학생에게 가르치는 것은 적절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결과론적 관점에서 이제껏 존재하였던 공산주의의 단점을 그렇게 설명하는 것에 대하여 딱히 반론하고 싶은 것 역시 아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이를 배우면서 우리 체계의 정의로움에 한 껏 들떴던 것이 생각나 잠시 부끄러울 뿐이다. 그때의 나는 능력 있는 자가 더 많은 것을 가져가는 우리 체계의 정의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왜일까. 아마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그게 정의라고 나에게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어린아이는 그렇게 사회화되는 법이다. 지난주 우리 회사로부터, 적절한..
선택적 윤리 박민규를 좋아한다. 그의 작품뿐 아니라, 그의 생각, 그의 기행까지 좋다. 지난 십여 년 동안 나는 그의 빠돌이였고, 그는 나의 아이돌이었다. 처음 읽은 것은 단편집인 '카스테라'였는데 그것은 참으로 텅 빈 냉장고에서 발견된 빵 같은 느낌이었다. 특이한 작가다.라고 생각했다. 05년도에는 모든 문학에 어느 정도의 데모크라시와, 다시 말해 전두환과, 다르게 말하자면 민주주의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90년대 모든 문학에 하루키가, 다시 말해 존재론과, 다르게 말하자면 노르웨이의 숲이 있었던 것이나, 2014년 이후 모든 문학에 부끄러움과, 다시 말해 세월호와, 다르게 말하자면 무력감이 섞여 있었던 것, 그리고 나아가 2019년 모든 문학에서 페미니즘과, 다시 말해 헤이트 스피치와, 다르게 말하자면 분노..
세번째 데미안 다시 한번, 데미안을 읽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이 단호한 문장들과 이상하리만치 매혹적인 신의 이름을 듣게 되면, 자연스럽게 데미안과, 헤세와, 싱클레어를 생각하게 되는 거다. 그건 물론 '나를 이스마엘이라 부르라.'를 들을 때 백경이 떠오르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으나, 데미안 쪽이 책의 두께가 월등히 얇은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출근길에 백경을 들고나가기는 무리다. 데미안이라면, 출근 버스 안에서건 점심 식사 후의 짧은 휴식이건 간에 어찌 되었든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씩 나이 먹고, 직장에 다니고, 아이의 부모가 되면서, 나는 점점 물리적 제약을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