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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에세이

Alphabet series 비판

[그림 1]

 루이비통의 마크를 형상화한 것이 분명한 사진 작품 앞에서 미소 짓고 있는 두 사람은 Vanessa Beecroft와 Jean Marc Gallot이다. Beecroft는 작품의 작가로서, Gallot은 이 전시장을 제공한 루이비통의 President로서 이 자리에 섰다. 루이비통은 샹젤리제 거리에서 주말에도 본인들의 상품을 판매할 권리를 막 얻은 참이었고, 이 사진 작품은 그것을 기념하는 훌륭한 승전비가 될 것이었다. 루이비통은 Beecroft가 이 연작들에 대한 저작권 분쟁에 휘말리게 될 때까지 이 작품을 샹젤리제 거리에 전시하였다. 이 작품은 또한 Vanessa Beecroft의 알파벳 연작을 구글에서 검색할 때에 가장 처음 등장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구글의 검색 순위는 예술로서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녀의 다른 Alphabet 연작과의 비교에서도 이 작품의 열등함을 쉽게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녀의 다른 작품([그림 3])에서 언어는 인체에 의해서 쓰여진다기보다 인체에 의해 해체된다. 관객은 이 것을 쉽게 철자로 인지하는데, 이 인지 이후에도 VBLV가 도무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휩싸인다. 이는 물론 그녀와 Client의 이름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이 혼란의 사이에서 모델들은 다시 한번 그들의 몸과 얼굴을 관객에게 들이밀 시간을 얻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각 철자는 모델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이며 언제든 해체 및 변형될 자유를 획득한다. 그러나 다시 [그림 2]를 살펴본다고 해도, 이는 확고히 루이비통의 로고일 뿐이다. 이 것은 Beecroft만의 잘못이 아니며, 루이비통의 명성이 예술을 집어삼킬 만큼 견고하였음을 변명거리로 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품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볼 때 경직된 모델들의 자세와 명확한 피부색의 구분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로서 Beecroft가 그녀의 Client를 만족시키기 위해 -예술 작품이라기보다는- 정교한 핸드백을 제작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모델들은 루이비통의 확고한 디자인 철학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해 경직되어 있다.

[그림 2]
[그림 3]

 

  이러한 작품 앞에 서 있기 때문에, [그림 1]의 Beecroft 역시 자신의 작품 앞에서 경직되어 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다른 그녀의 초상들과 달리 그녀는 그녀의 Client가 제시한 Dresscode와 표정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끝단이 지저분한 스커트는 마지막 자존심이었을까? 불편해 보이는 구두에 살짝 드러난 발가락은 마치 모아진 가슴골 같아 보기 좋지만 안쓰럽다. 그에 비해 Gallot은 마치 맞춤정장을 입은 듯 편안해 보인다. 이러한 구도는 Beecroft의 작은 키에서 더 강조되는데, Gallot은 평가자의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같은 표정이라도 누군가의 얼굴이 다행을, 누군가의 얼굴이 만족을 의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작품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고집스럽게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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