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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감상

왜 예술사진인가 (Why art photography) - 루시 수터

사진은 근 100년 간 예술의 중심 매체였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주변인 취급을 받았다. 대중에게 널리 읽혀 온 미학 이론서들은 사진을 애써 외면 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는 첫째, 대부분의 미학 담론이 사진 없이도 설명 될 수 있었기 때문이고, 둘 째, 사진의 예술성에 대한 예술계 내부의 통일 된 의견이 없었기 때문이며, 셋 째, 사진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헤매이는 우리들과 대조적으로, 촬영기술만은 지체 없이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이 중 셋째 이유는 특히나 중요하다. 35mm 필름이 대중화 된 이후로 압도적 다수의 사진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손에서 탄생했으며 이러한 경향은 한 차례의 변곡점도 없이 강화되어 왔다. 즉, 현존하는 사진의 대다수는 애초에 자의에서든 혹은 타의에서든, 해석 될 가치가 없는 물건이다. 수억의 인스타그램 이미지나 CCTV 촬영물에 해석을 붙인다면 그 또한 우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에 사진 예술 만큼 독자적 해석이 필요한 분야는 많지 않다. 연극이 문학의 연장이고 영화가 연극의 연장임은 명백한 사실인데, 오직 사진만은 그 뿌리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회화는 빈 프레임에 무언가를 채워 넣음으로서 완성된다. 반대로 사진은 프레임에 있던 무언가를 빼 냄으로서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진은 회화와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없다. 영화와의 비교는 어떠한가? 어떤 이가 감독도 배우도 모르는 3류 첩보 영화를 볼 때, 화려한 총격신의 주체는-그 영상의 길이와 관계 없이-비밀 요원 혹은 악당이다. 그러나 영화의 스틸 컷을 보는 이는-그 스틸 컷의 완성도와 관계 없이- 그 총격신을 연기하는 배우를 인지한다. 예술 사진-이 경우 연출 사진-은 그 자체의 매체적 특성으로서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현실성을 획득한다. 문학 역시 마찬가지다. 문학에서 작가의 역할은 시대에 따라 분명히 변화되어 왔으나, 어떠한 문학에서건 간에 작가는 작품 안에 존재한다. 독자는 물론 문학에서 다루는 세계가 작가가 의식적으로 창조한 세계임을 인지하나 기꺼이 그 안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관찰한다. 그러나 사진을 보는 이는 언제나, 작가가 창조한 프레임 내부의 세계와 카메라를 통해 분리 되어 있는 현실의 세계를 인지한다.

그렇다면 예술 사진과, 다큐멘터리 사진 혹은 일상 사진의 차이는 무엇인가? 2020년의 우리는 사진이 얼마든지 조작 될 수 있음을 안다. 그럼에도 우리가 어떤 주장을 할 때 그 논거로서 가장 쉽게 인용되는 것은 여전히 사진이다. 대부분의 과학 논문들에는 data table과 함께 사진이 실린다. 여전히 사진 한 장은 정치인의 정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정도의 생명력을 가진다. 심지어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기록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증거 자료 역시 사진(screen shot)이다. 만화적으로 보정 되었다는 사실이 명백한 관능적 여성의 사진에 수 만건의 '좋아요'가 click된다. 사실 우리가 흔히 '포토샵'이라고 부르는 작업은 adobe 의 photoshop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가진다. 소련의 프로파간다가 변화할 때 옛 세대의 인사들은 이전의 사진에서 지워짐을 통하여 역사에서 소거되었다. 사진은, 그 진정성과 관계 없이, 그야말로 진실을 바꿀 만큼의 실제성을 가지고 현실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 사진은 그 것이 예술 작품으로 분류됨으로써, 혹은 미술관에 전시됨으로써 실제성을 박탈당한다. 그 대신 예술 사진이 획득하는 것은, 바야흐로 진정성이다.

현실의 영역에 다큐멘터리 사진, 일상 사진, 그리고 진짜 세계가 있다면 회화, 영화, 문학은 상상의 영역이다. 예술 사진은 그 자체로 이들 사이의 격벽을 허문다. 그러므로 예술 사진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과 다른 도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예술 사진이 시작된 지 10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대중에게 그러한 도구는 주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주된 비평의 대상이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다큐멘터리 사진 쪽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루지 수터의 'why art photography?'는 가뭄 속 단비와도 같은 책이다. 이 것은 매우 드물게도 예술 사진을 대중에게 소개하기 위한 목적에서 쓰여진 책이다. 그리고 더욱더 드물게도 예술 사진의 역사를 회화와 분리하는 것에 성공하였을 뿐 아니라, 대학교 교양 과목 수준의 쉬운 언어로 기술되었다.대중은 예술 사진을 비웃고, 심지어 조롱하는데, 예술 경매에서 예술 사진의 가치는 높아져만 간다. 중세의 유화가 그러했듯이 예술 사진이 상류층의 전유물로 고착화 되어가는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이 이 불평등을 께어 줄 단초가 될지도 모르겠다. 예술 사진은 가치 없는 것이 아니다. 예술 사진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단지 아직까지 소개되고 공유되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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