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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일기

세번째 데미안

  다시 한번, 데미안을 읽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이 단호한 문장들과 이상하리만치 매혹적인 신의 이름을 듣게 되면, 자연스럽게 데미안과, 헤세와, 싱클레어를 생각하게 되는 거다. 그건 물론 '나를 이스마엘이라 부르라.'를 들을 때 백경이 떠오르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으나, 데미안 쪽이 책의 두께가 월등히 얇은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출근길에 백경을 들고나가기는 무리다. 데미안이라면, 출근 버스 안에서건 점심 식사 후의 짧은 휴식이건 간에 어찌 되었든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씩 나이 먹고, 직장에 다니고, 아이의 부모가 되면서, 나는 점점 물리적 제약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우연히 라디오에서 아브락사스의 이름을 들은 그날 난 벌써 인생 세 번째 데미안을 책장에서 빼든다. 내가 라디오에서 들은 것이 이스마엘의 이름이었더라면 내 손길이 그토록 단호할 수는 없었다.

 

 첫 번째 데미안을 읽은 것은 중학생 때였다.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나는 그 때만큼 바빴던 적이 없었으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만큼 여유로웠던 적 또한 없었다. 많은 책을 읽을 시간이 있었고, 많은 공부를 해도 될 당위가 있었고, 많은 허세를 부릴 여유가 있었다. 부족했던 것은 삶에 대한 노련함이다. 그게 당위와 여유인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사실 치열하지 않아도 괜찮았을 텐데. 정말이지 치열했으면서도 치열할 필요가 없는 시기였다. 특별히 불행했다기보다는, 그저 남들과 똑같이 중요한 기회를 온 힘을 다해 낭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이마에는 카인의 표식이 없었다. 나는 니체의 낙타 그 자체였으며, 데미안을 읽으면서도 꿈쩍없이 우직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당시의 내가 사실은 이 책의 단 한 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다시 말해 표식을 지닐 만큼 똑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나에게도 싱클레어의 유년이 그랬던 것과 같은 시험의 시기가 있었다. 첫 도둑질을 했던 것도 그 때다. 첫 애인을 만든 것도 그 때였고, 태연스러운 거짓말과 나태한 진심의 차이에 대해 의문해 본 것도 그때였다. 비록 허세일 지언정 철학을 읽어데고, 상대성 이론을 공부하고, 어른인 채 술과 담배를 해 본 것도 그 때다. 요컨대 나 역시, 행여나 부수어 질까 노심초사하며, 알의 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나 열병과도 같았던 싱클레어의 노크와 다르게, 나의 노크는 그저 일탈의 범위를 넘지 않은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니, 데미안은 어디에나 있다. 흐릿하되 투명한 알벽 너머에는 수많은 데미안이 넘실 거린다. 흔하지 않은 것은 그걸 직시할 싱클레어 쪽이다. 

 

 그 시기의 나는 반복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따듯한 액체가 고무장갑에 닿으며 꿈이 시작 된다. 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어떤 이의 옆구리에 막 칼을 쑤셔 넣은 참이다. 개구리 소리가 들리고, 사위는 어두워 별 빛 하나 없다. 보이지 않는 피는 꿀렁이며 흐르는데, 어떤 이는 신음 소리 하나 없이 절명했다. 난 우비를 벗어 가방에 넣고, 밧줄을 꺼내 그의 목과 두 발을 연결하여 묶는다. 그의 양 팔이 성가셨으므로, 뒤로 돌려 박스 테이프로 고정한다. 그리고는 주변의 돌을 잔뜩 주워, 테이프로 칭칭 감아 남은 끈에 묶어 단다. 끈의 길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몇 차례 손을 본다. 그 덩어리를 저수지에 던져 넣을 때의 무게감이 섬뜩하여, 나는 꿈에서 깬다. 어째서 그의 따듯한 피가, 뻣뻣한 팔과 목이 아니라 그 무게가 섬뜩했을까. 난 이 꿈을 자주 꾸었고, 그럴 때마다 꿈과 현실을 혼동하여 누군가 나의 범죄를 눈치채지 않도록 더욱더 움츠러들었다. 난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이 범죄를 가리기 위해 언행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크게 웃고 떠들면서도, 진실된 친구를 얻는 것이 힘들었던 것은, 이 공유될 수 없는 범죄의 기억 때문이다. 난 알을 깨고 아브락사스에 날아가는 대신 알 속에서 그와 동침하였다. 

 

 이제 세번째 데미안을 읽으니, 이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어떤 순간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겠다. 이 것은 낙타가 죽어 사자가 되고, 사자가 죽어 어린아이가 되고, 어린아이인 채 세상에 던져지는 이야기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손짓하고, 싱클레어는 우리에게, 손짓한다. 따라와 같은 표식을 새기자고. 새는 알을 깨고 나와야 새이므로, 우리 모두는 늦건 빠르건 표식을 지닐 것이다. 이제 나의 알에도 조금씩 금이 보인다. 헤세가 이 이야기로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필시 교육서를 썼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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