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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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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데미안 다시 한번, 데미안을 읽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이 단호한 문장들과 이상하리만치 매혹적인 신의 이름을 듣게 되면, 자연스럽게 데미안과, 헤세와, 싱클레어를 생각하게 되는 거다. 그건 물론 '나를 이스마엘이라 부르라.'를 들을 때 백경이 떠오르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으나, 데미안 쪽이 책의 두께가 월등히 얇은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출근길에 백경을 들고나가기는 무리다. 데미안이라면, 출근 버스 안에서건 점심 식사 후의 짧은 휴식이건 간에 어찌 되었든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씩 나이 먹고, 직장에 다니고, 아이의 부모가 되면서, 나는 점점 물리적 제약을 무..
테드 창_영으로 나누면 1. 다른 단편 '이해'에서도 다루었듯이, 이해가 반드시 화합을 야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토미노 요시유키의 건담 시리즈들과 반대의 관점이라 재미있다. 건담의 뉴타입들은 서로를 이해함으로써 대통합하고 전쟁을 멈추었는데, 확실히 만화적인 이야기다. 이해는 차이를 유발한다. 작중 레테는 자기 자신과 다름 없었던 수학을 이해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칼은 그런 레테를 이해함으로써 이별을 확신했다. 결국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과 다름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다. 사랑이든 증오든 동정이든 관계에 대한 모든 감정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음에 기반한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해하는 척 기만하는거다. 만약 누군가를 완벽히 이해하게된다면 더이상 그 관계에 의미가 있을리 없다. 수학을 생각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