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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에세이2018.11.01 23:28



 몇일 전 출근길에 라디오에서 Christina aguilerafighter를 들었다. 고등학교 때 즐겨 듣던 곡이라 볼륨을 높였다. 이 곡은 그녀의 정규 2집인 Stripped의 수록 되어 있는데, 그녀의 앨범 중 가장 사랑 받은 앨범일 거다. 지금도 그런 지 모르겠으나, 당시의 팝송 앨범에는 자켓에 좀 오글거리는 한글 해설서가 꼭 끼워져 있었다. 이 것이 내가 산 첫 외국 앨범이었으므로, 나는 다소 오글거리는 그 해설서까지 전부 정독 했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적의 나는 몇 가지 이유로 팝송을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우선 당시 유행하던 팝송을 활용한 영어 교육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액상 감기약에 들어 있는 조잡한 딸기 맛 시럽, 어린이 치과의 간호사가 착용한 우스꽝스러운 마스크,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는 다는 산타 클로스와 같은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러한 교육 방식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어른의 노련함과 쉰내가 있었고, 그 것에 대해 내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책은 애써 무시하는 것 뿐이었던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 당시의 나는 팝송이 나에게 가요로서 기능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난 또래 중에서도 특히나 영어를 못 하는 아이였고, 가사까지 즐길 수 있는 완벽한 한국 가요가 있는데 어째서 팝송을 들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당시의 나는 무엇을 즐기기 위해 무엇을 배울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던 내가 무슨 변덕인지 이 앨범을 샀고, 닳도록 들었고, 친구의 생일에 선물로 한 장 더 사기까지 했던 거다. 당시에는 그 것이 변덕이라고 생각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대세에 자연스럽게 굴복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굴복의 중첩이다. 이제 난 평범한 30대 만큼 팝송을 듣고 평범한 30대 만큼 팝송을 좋아한다. 존 버거가 그의 책 사진의 이해에서 체 게바라에 대해 평한 바 있다. 체 게바라는 세상이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지경임을 발견했고, 그래서 혁명을 지속했고, 그래서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다고. 그는 혁명을 멈추고 세상을 용납할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서다. , 세상은 그의 혁명에 부수어 질 수 없었다. 그 역시 살기 위해서다. 만약 체 게바라가 세상을 용납해 버렸다면, 체 게바라는 죽어 없어지고, 평범한 30대가 되고, 평범한 노인이 되고, 평범한 무덤이 되었을 거다. 나는 지금 그러한 죽음의 중첩 속에서 어른이 된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Christina aguileraFighter는 그 오글거리는 해설서에 적혀 있듯이, 세상을 용납하지 않기로 한 그녀의 선언이었다. 그 것을 생각하며 노래를 듣다 보니, 세상을 용납한 나로서는 조금 아이러니한 기분이 든다. 여전히 Fighter는 듣기 좋고, 난 행복한데 무슨 상관인가 싶기도 하지만.


 아이러니란, 등신들이 비행기 사고로 죽은 밴드의 노래에 맞춰 비행기 안에서 춤추고 있는 걸 말하는 거야.

- 스티브 부세미, 영화 콘에어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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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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