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8.11.17 이상한 성공
  2. 2018.11.04 밤빛 #002
  3. 2018.11.04 보헤미안 랩소디, 2018
  4. 2018.11.01 Fighter (2)
note/에세이2018.11.17 13:24

나는 화학자다. 나는 물리학, 특히 현대 이론 물리학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슈뢰딩거에 대하여, 혹은 하이젠베르크에 대하여, 배운 바 대로 몇 마디 강의를 할 수는 있을 거다.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여 몇 가지 수식을 풀고, 몇 가지 결과를 예측할 수는 있을 거다. 그러나 여러 모로 살펴 보아도, 그 들에 대해 내가 충분한 수준의 이해를 했다고는 생각 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현대 물리학은 어떤이의 노트에서 탄생 되어 누군가의 실험실에서 그 것이 맞다는 것이 실증 된 것이다. 내게 익숙한 화학은 어떤이의 실험실에서 탄생 되어 그 것을 설명하는 이론을 노트에 적은 것이다. 나의 뇌는 허상에서 탄생된 진실을 수용하는 상상력이 부족하다.

경제학은 내가 어려워 하는 또 하나의 분야다. 자본 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경제의 중요성을 망각할 수도, 선택적으로 무관심할 수도 없다. 내 계좌 속 숫자는 경제의 일부이며, 곧 내 생존 수단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경제에 대해서 아직 단 한가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다. 나에게 경제학은 현대 물리학과 마찬가지로 흥미롭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분야인 것이다. 나는 몇 해 전 에릭 바인하커의 ‘부의 기원’을 읽으며, 경제학과 현대 물리학의 닮은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적어도 일부는, 기존의 경제학 이론이 어떻게 일반 개인을 기만하고 있는가에 대해 설명 한다. 에릭 바인하커의 말에 따르자면, 기존의 경제학 이론이라는 것은, 내게 익숙한 과학적 방법론에 의해 탄생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무리한 가정-대표적으로, 모든 이는 가장 이상적인 판단을 한다는 등의-에 기반하여 탄생 된, 일종의 프로파간다다. 수요 공급 곡선은 실제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가이드 라인에 가깝다. 대중적인 경제학은 그 자체가 실증 된 적 없다는 사실을 감춤으로서, 혹은 그 자체가 완벽한 법칙인 양 가장함으로서, 대중을 통제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비슷한 것으로 윤리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종류의 대중 통제 수단이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아니꼽다. 이 것이 자연 법칙에 의한 필연적 결론이 아니라 누군가 혹은 누군가들의 의지라면, 그 의지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이득 혹은 피해에 대해 어떤 설명이 가능할 것인가? 경제학이라는 것은, 이제 다시말하자면 자본주의라는 것은 윤리 만큼이나 사회의 필요 조건일 것인가? 누군가가 대중의 무지를 의도적으로 이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챙긴다면, 사회는 그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피 한방울로 암과 당뇨 등 240여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호언 장담 하던 여성 사업가 A가 있었다. 그녀는 금발에 매력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스토리 텔링에 뛰어 났다. 그녀가 7억 달러의 투자금을 모은 것은 오로지 그 두가지 이유다. 2018년 밝혀진 바로는, A의 회사가 가지고 있었던 기술은 송두리째 거짓이었기 때문이다. A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홈스이며, 이와 관련하여 50만 달러의 벌금과 함께 향후 10년간 어떤 상장사에서도 관리자로 일할 수 없게 하는 징계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애초부터 피 한방울로 병을 검진하는 것이 불가능한 기술임을 알고 있었다. 단지 대중이 그것을 몰랐을 뿐이다.



또 한 명의 매력적인 사업가 B를 상상한다. 그의 아이디어는 사회에 만연한 경제 문제와 환경 문제를 동시에 해결 할 수 있을 만한 것이었고, 여기에 그 자체가 가지는 놀라울 정도의 카리스마가 더해져, 그의 사업은 큰 투자를 받는다. 그는 그 돈으로 공장을 짓고, 노동자를 고용한다. 그는 이 성공-아직 제대로 된 제품을 팔지 못 했음에도 불구하고-을 기반으로 보다 팬시한 아이디어를 사회에 제시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회사를 만든다. 가끔 뉴스 인터뷰에 등장하여 보다 팬시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B는 이제 수십 조원의 자산가다. B는 물론 엘런 머스크다. 그러나 그가 만든 테슬라와 중국에 난립하고 있는 슈퍼 전기차 업체간에 과연 기술력의 차이가 존재하는가? 나의 기준에서, 테슬라는 아직 양산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대중과 시장의 일부만이 그렇다고 믿을 뿐이다.



2018년 4월,  나와 동갑인 1986년생 사기꾼 이희진에 대한 징역 및 벌금형이 선고 되었다. 그의 형량(5년, 200억원)에 대해 적당하다는 의견도 있을 것이고, 부족하단 의견도 있을 것이지만 그 것이 나의 관심은 아니다. 난 단지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이 흥미로웠다.

그가 탄 베이론의 가격은 20억원이 넘는다.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인 노동자가 베이론을 한 순간이라도 몰아 볼 가능성은 없다.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베이론의 가치는 한 노동자의 존재 가치를 아득히 뛰어 넘기 때문이다. 이희진에게서 베이론을 빼앗고, 그 이상의 노역을 부여한다고 해도, 혹은 그에게 사형을 집행한다고 해도, 그가 허상에 의한 성공으로 한 때 베이론을 탔다는 사실을 보상할 수 있을까? 나 혹은 당신, 평범한 노동자가 목숨을 줄 테니 베이론을 타 보겠다고 사정한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문전박대 당할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를 포함한 자본주의의 모든 것이 자본의 순환을 늘리고, 결국 개개인의 행복에 기여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 모든 것이 아니꼽다. 그 행복은 결국 허상에 기댄 것이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참 이상한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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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그냥"
photo/밤빛2018.11.04 13:45


밤빛,

23:43


@kim_jaeyoung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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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그냥"
TAG 밤빛, 사진
note/감상2018.11.04 00:27

 특히, 최근의 나는 영화를 볼 때 군더더기를 참을 수 없다. 왜 들어갔는지 모를 장면 혹은 인물을 보게 되면, 그 나머지가 얼마나 훌륭하던지 간에, 그 영화와 감독이 저질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다행이도 최근에 개봉하는 소위 명장들의 작품은 대부분 군더더기가 없다. 그러므로 나로서는 그 것을 요즘 영화 판의 트렌드라고 부르고 싶다.

 그런 측면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는 완벽에 가깝게 타이트 하다. 이 영화는, 굳이 비유하자면, 프레디 머큐리의 자서전이기 보다는 굵은 선으로 그려진 연표에 가깝다. 영화는 그 연표를 박진감 있게 따라간다. 나머지는 그의 공연을 충실하게 재현했을 뿐이다. 이 영화의 목적은 그를 설명하는 것이 아님이 명확하다. 그 대신 이 영화는, 그가 불러일으킨 감동을 2018년의 참을성 없는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고자 노력한다.

 전기 영화를 기대한 사람이 있다면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와중에 하필이면 내가 전혀 신뢰하지 않는 한 언론의 의견이 나와 다르다는 점이 재미있다.[링크]) 하지만 이 영화는 분명히 재미있고, 감동적이었으며, 내 플레이 리스트를 한 동안 퀸으로 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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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그냥"
note/에세이2018.11.01 23:28



 몇일 전 출근길에 라디오에서 Christina aguilerafighter를 들었다. 고등학교 때 즐겨 듣던 곡이라 볼륨을 높였다. 이 곡은 그녀의 정규 2집인 Stripped의 수록 되어 있는데, 그녀의 앨범 중 가장 사랑 받은 앨범일 거다. 지금도 그런 지 모르겠으나, 당시의 팝송 앨범에는 자켓에 좀 오글거리는 한글 해설서가 꼭 끼워져 있었다. 이 것이 내가 산 첫 외국 앨범이었으므로, 나는 다소 오글거리는 그 해설서까지 전부 정독 했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적의 나는 몇 가지 이유로 팝송을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우선 당시 유행하던 팝송을 활용한 영어 교육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액상 감기약에 들어 있는 조잡한 딸기 맛 시럽, 어린이 치과의 간호사가 착용한 우스꽝스러운 마스크,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는 다는 산타 클로스와 같은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러한 교육 방식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어른의 노련함과 쉰내가 있었고, 그 것에 대해 내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책은 애써 무시하는 것 뿐이었던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 당시의 나는 팝송이 나에게 가요로서 기능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난 또래 중에서도 특히나 영어를 못 하는 아이였고, 가사까지 즐길 수 있는 완벽한 한국 가요가 있는데 어째서 팝송을 들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당시의 나는 무엇을 즐기기 위해 무엇을 배울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던 내가 무슨 변덕인지 이 앨범을 샀고, 닳도록 들었고, 친구의 생일에 선물로 한 장 더 사기까지 했던 거다. 당시에는 그 것이 변덕이라고 생각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대세에 자연스럽게 굴복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굴복의 중첩이다. 이제 난 평범한 30대 만큼 팝송을 듣고 평범한 30대 만큼 팝송을 좋아한다. 존 버거가 그의 책 사진의 이해에서 체 게바라에 대해 평한 바 있다. 체 게바라는 세상이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지경임을 발견했고, 그래서 혁명을 지속했고, 그래서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다고. 그는 혁명을 멈추고 세상을 용납할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서다. , 세상은 그의 혁명에 부수어 질 수 없었다. 그 역시 살기 위해서다. 만약 체 게바라가 세상을 용납해 버렸다면, 체 게바라는 죽어 없어지고, 평범한 30대가 되고, 평범한 노인이 되고, 평범한 무덤이 되었을 거다. 나는 지금 그러한 죽음의 중첩 속에서 어른이 된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Christina aguileraFighter는 그 오글거리는 해설서에 적혀 있듯이, 세상을 용납하지 않기로 한 그녀의 선언이었다. 그 것을 생각하며 노래를 듣다 보니, 세상을 용납한 나로서는 조금 아이러니한 기분이 든다. 여전히 Fighter는 듣기 좋고, 난 행복한데 무슨 상관인가 싶기도 하지만.


 아이러니란, 등신들이 비행기 사고로 죽은 밴드의 노래에 맞춰 비행기 안에서 춤추고 있는 걸 말하는 거야.

- 스티브 부세미, 영화 콘에어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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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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